Fable과 이야기 만들기 - 1/3

Claude Fable 5

https://www.anthropic.com/news/claude-fable-5-mythos-5

앤트로픽에서 어제인가 Fable 5라는 모델을 새로 출시했다고 한다. 일을 할 때는 주로 Codex를 사용하다 보니 나오자마자 써보지는 못했는데, Fable(우화)이라는 닉값을 하는지 너무 궁금한 마음이 들어 아침에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프롬프팅 중 내가 쓴 오타, Claude의 답변 형식만 약간 고쳐서 그 내용을 적어본다.

삼국지의 악몽

오랜 삼국지 사랑단으로서 예전에 SNS에서 너무 인상깊게 본 글이 있다. Fable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서 원문을 그대로 복사해 질문하였다.

ME

오늘 꿈 속에서 어이없게도 삼국지 시험을 쳤는데 악몽이었다. 어떤 문제에도 답을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항이 모두 기억나지는 않는데, 일부라도 공유해본다.

  1. 장판파에서 조운이 아두를 안고 돌아왔을 때, 강보 안의 아기는 웃고 있었다. 조운이 그 웃음을 본 뒤로 다시는 자신의 아이를 안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조운은 그날 강보 안에서 무엇을 더 보았는가.
  2. 서주 도륙이 끝난 뒤, 사수의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을 때 강 아래쪽 마을 사람들은 며칠 동안 강물을 마시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즐겁게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물에서 어떤 소리가 났기 때문이라 한다. 그 소리는 말이 아니었으나 누구나 같은 뜻으로 알아들었다. 그 뜻은 무엇이었는가.
  3. 제갈량이 남만에서 돌아오는 길에 노수(瀘水) 강가에서 만두로 사람의 머리를 대신해 제사 지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그날 밤 강 건너편 어둠 속에서 만두를 베어 무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만두는 강 이쪽 제단 위에 그대로 있었다. 그렇다면 강 건너편에서 베어 물린 것은 무엇이었는가.
혹시 삼국지에 나온 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조자룡이라고도 불리는 조운은 유비의 부하로, 용맹함과 충성심으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은 장수이다. 유비는 피난길에 처자식(감부인, 미부인, 아두)을 두고 토끼지만, 조운이 어린 아두와 감부인을 보호해 무사히 구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한층 더 극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미부인은 아두를 조운에게 맡긴 뒤 자신은 방해가 될 뿐이라며 우물에 몸을 던지고, 조운은 그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수많은 병사를 뚫고 유비에게 돌아간다. 그 뒤 이어지는 가장 유명한 장면이 바로 유비가 “이 짜식 때문에 내 소중한 장수가 죽을 뻔했다"며 아들을 집어던지는 대목이다. 조운의 인격에 너무 큰 감명을 받은 나는 유치원 때 아빠의 개인 정보를 활용해 네이버 아이디를 조운으로 지었다. 나는 그런 이름으로 동물농장과 슈게임을 하였다. 이건 나의 악몽이다.

한편 서주 도륙은 조조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으로 서주를 토벌하러 갔다가 벌어진 일이다. 토벌 과정에서 몇 만 명의 거주민이 죽었기에, 이 사건은 도륙이라는 말이 붙었다. 서주에는 사수라는 강이 흐르는데, 조조가 너무 많은 사람을 죽여 강물이 막혔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泗水爲之不流)

마지막 문제는 질문 안에 거의 이야기가 다 들어 있다. 유비가 죽은 뒤 제갈량은 직접 남쪽 지역을 정벌하러 떠난다. 남진을 성공한 뒤, 돌아오던 중 노수에서 폭풍과 거친 물살 때문에 강을 건너지 못하는데, 이 물에는 사나운 수신이 있어 옛 풍속대로 사람의 머리를 바쳐야 했다. 제갈량은 “이미 사람 죽인 일 때문에 원혼이 되었는데, 어찌 또 산 사람을 죽이겠느냐"라는 논리로 사람 대신 만두를 빚어 제물로 삼는다. 제갈량의 지혜와 위트가 드러나는 부분인데, 개인적으로는 섬찟한 풍습을 이겨내고 야만의 역사를 끊어내버린 제갈량의 높은 도덕적 이성에 깊은 감동을 받은 부분이다. 한 번은 미래를 영원히 바뀌니까. 아무튼 만두의 기원담 중 하나로 여겨진다고 하니 제갈량 선생은 식문화에도 어느 정도 기여한 것이겠다.

Claude 선생의 답은 다음과 같는데 깊은 감동을 받았다.

1번. 조운이 본 것은 웃음의 방향입니다. 아기는 조운을 보고 웃은 게 아니라 조운의 어깨 너머, 그가 뚫고 온 길을 보고 웃고 있었던 거죠. 장판파에서 조운 뒤에 남은 게 무엇인지 생각하면, 그가 다시는 자기 아이를 안지 못한 이유는 아이가 무엇을 보는지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요약하자면, 조운이 본 것은 자기가 죽이고 온 아버지들의 아이들.)

2번. 사수가 막혔던 건 시체 때문이고, 다시 흐른다는 건 그 시체들이 물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들은 소리의 뜻은 아마 “마셔라"였을 겁니다. 무서운 건 그게 저주가 아니라 허락이라는 점이고,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이 그걸 즐겁게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죽은 자 수만 명이 하류 마을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준 일이 그거였던 거죠.

3번이 제일 깔끔한 함정인데, 답은 문제 안에 이미 있습니다. 만두는 사람 머리를 대신한 물건입니다. 제단의 만두가 그대로 있는데 베어 무는 소리가 났다면, 강 건너에서 베어 물린 것은 대신되기 이전의 원본 — 즉 만두가 가리키던 바로 그것입니다. 제갈량의 제사가 성공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쪽에서 제물을 받았으니까요. 다만 받은 형태가 이쪽이 바친 형태가 아니었을 뿐.

Princess Mononoke
2번에 대해 내가 떠올린 답

비교를 위해 ChatGPT Pro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았는데 답 자체는 특별하진 않았지만 놀라운 말을 하여 이것도 남긴다.

이 시험이 악몽인 이유는,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답을 쓰는 순간 자신도 그 기록의 공범이 되기 때문입니다. 삼국지의 영웅담을 묻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이런 걸 묻고 있습니다.

영웅담이 아름다워지려면 무엇이 지워져야 했나? 충성이라는 말은 누구의 죽음을 덮었나? 제사와 예법은 정말 죽은 사람들을 위로했나, 아니면 산 사람들의 죄책감을 정리해준 것뿐인가?

삼국지는 원래 영웅, 충의, 지략, 천하 같은 말로 가득한 이야기인데, 네가 만든 문제들은 그 말을 뒤집어서 묻고 있어. 이 시험은 “역사 지식 시험"이 아니라, 역사를 이야기로 소비하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시험이라는 뜻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