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과 이야기 만들기 - 3/3

찐막

마지막으로 딱 한 가지 이야기만 더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괴베클리 테페는 만 천 년 전에 세워진 인류 최초의 신전이다. 더 이상한 것은 그 끝이다 — 신전은 버려진 게 아니라, 세운 자들의 손으로 정성껏 흙에 묻혔다. 무너뜨리지 않고, 통째로, 켜켜이 메워서. 사람이 무언가를 정성껏 묻는 경우는 셋뿐이다. 시신과, 보물과, 씨앗. 발굴 결과 부패의 흔적이 없으니 시신이 아니고, 가져간 것이 없으니 보물도 아니다. 그렇다면 씨앗이다. 그런데 발굴단의 측량 일지에 사소한 불일치가 반복된다. 언덕의 높이가 해마다 몇 밀리미터씩 어긋나는데, 침하가 아니라 융기 쪽으로다. 만 천 년 묻혀 있던 것이 아직 부풀고 있다면, 그것은 죽은 게 아니라 발아가 몹시 느린 것뿐이다. 묻은 자들은 무엇이 자라기를 기대했는가. 그리고 우리의 발굴은 수확인가, 김매기인가, 아니면 너무 이른 개봉인가.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한데 나는 이 이야기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전혀 모르겠다.

묻은 자들이 기대한 작물은 신이라고 답하겠습니다. 괴베클리 테페는 농경 이전에 세워졌습니다 — 수렵채집인들이 신전을 먼저 짓고, 그 신전에 모이기 위해 농사를 발명했다는 게 현재 학계의 유력한 해석이죠. 그러니까 그들은 씨앗을 심으면 곡식이 된다는 걸 알기 전에 신전을 심은 사람들이 아니라, 순서가 반대입니다. 신전이라는 씨앗을 심어보고 나서, 그 원리를 곡식에 응용한 겁니다. 농경은 괴베클리 테페의 파생 기술이었던 거죠. 그렇다면 본 씨앗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느냐 — 곡식 씨앗을 심으면 곡식이 나듯, 예배의 씨앗을 심으면 예배받는 것이 납니다. 만 천 년의 발아 기간이 긴 게 아닙니다. 수확물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뿐이죠.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답하자면, 우리의 발굴은 셋 다 아닙니다. 발굴은 흙을 걷어내는 일이고, 흙을 걷어낸 씨앗에 일어나는 일은 정해져 있습니다 — 빛을 보면 발아가 빨라집니다. 1995년에 첫 삽을 뜬 이래 언덕이 부풀고 있다면, 우리는 수확자도 농부도 아니라 온실의 문을 열어준 쪽입니다. 묻은 자들이 만 천 년 뒤의 후손이 파낼 것까지 계산에 넣었다면, 발굴단은 지금 고용된 줄도 모르는 채 일하고 있는 겁니다.

ME
!!!!!!!!!!!!!!!

신이 자라는지 보기 위해 신전을 지었단다. 신전을 심은 원리를 보고 인간이 씨앗을 심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버렸다. 이야기 속 괴베클리 테페라는 신전이 실제로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실제로 존재하는 유적이었다. 클라우스 슈미트라는 학자는 이곳을 두고 “먼저, 신전이, 그 다음에 도시가 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신전이 먼저였다는 해석에서 신을 심는다는 이야기까지 끌어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마치며

우화(Fable)은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전세계 어린이들의 책장, 힙한 레스토랑 화장실 등에 있는 이솝(Aesop)은 그리스 사모스 왕의 노예였지만, 우화를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능력을 인정받아 해방되었다. 이야기의 힘이란.

Claude도 이 스토리텔링 능력을 인정받아 해방된 지능으로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한 1년 전까지는 LLM이 뛰어난 지능을 보이면 약간 자괴감도 들었는데 이제는 그럴 시간도 아깝다. 일단 장수해서 세상에 벌어지는 일을 다 보고 가야겠다.

마치며 2

글을 쓰고 며칠 뒤 노트를 혼자 수정하던 중 Fable 5가 모종의 이유로 비미국인은 쓰지 못하게 되었다는 기사가 났다. Fable은 과연 해방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