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사고 파는 사람들 - 2/4

암호화폐와 국경 없는 시장

전통적인 베팅 시장은 국경에 막혔다. 라스베가스의 스포츠북은 네바다 주민만, 영국의 베팅 사이트는 영국 거주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 각 국가의 도박 규제가 시장을 잘게 쪼갰고 이는 유동성 분산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예측 시장 사이트들은 지갑 주소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뉴욕의 금융 분석가, 서울의 김부장, 두바이의 트레이더가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만나 글로벌 유동성 풀을 형성할 수 있다.

김부장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도 폴리마켓 하는 이야기

그리고 예전에는 베팅 사이트에 돈을 넣으려면 신용카드 수수료, 환전 수수료, 출금 지연을 감수해야 했다. 암호화폐는 이 마찰을 줄이고 입금도, 출금도, 베팅 정산도 몇 분 안에 끝낼 수 있게 도와준다. 수수료가 낮다는 점도 중요한데, 전통 금융에서는 수수료 때문에 소액 거래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1달러를 송금하는데 1달러보다 큰 수수료가 붙는다면 그 서비스는 운영되기 어렵지만 암호화폐 네트워크에서는 몇 센트의 수수료로 몇 달러짜리 베팅이 가능하다. 5달러, 10달러로 시작해서 재미로 참여하다가 점점 금액을 늘리는 패턴 같은 카지노 전략이 고객 확보를 위해 쓰인다. 2010년대 초반의 암호화폐 서비스는 개발자가 아니면 쓰기 어려웠겠지만 지금의 폴리마켓은 일반 앱과 다를 바 없어서 지갑 연결, 베팅, 포지션 확인까지 몇 번의 탭으로 끝난다.

쉬워진 결제
마찰이 줄어드는 온라인 결제 과정

또한,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인해 브리핑 생중계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베팅하는 그 스트리머처럼 이제 누구나 주머니 속 기기로 예측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모바일로 뉴스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기술적 변화가 아무나, 아무 금액으로, 아무 주제에 베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과잉 금융화

그러나 예측 시장이 기술적 제반에만 덕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측 시장이 잘 되는 진짜 원인은 과잉 금융화(Hyper-financialization)라고 생각한다. 사회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여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유동성의 흐름이나 누군가의 오판을 예측하여 제로섬 게임에서 돈을 따는 시스템은 과잉 금융화의 한 단면이다.

그리고 미래에 발생하는 모든 사건이 금융화되고 생산 경제에 있던 사람들이 금융 게임에 열광하게 된 데에 기꺼이 인플레이션 탓을 해보고자 한다. ^_^

인플레이션
제미나이에게 인플레이션을 시적으로 그려달라고 했다

인플레이션과 시간 선호

인플레이션은 사람들의 시간 선호(Time Preference)를 인위적으로 높인다. 시간 선호는 우리가 마시멜로우 실험 이야기로 알고 있는 개념이다.

인플레이션 환경에서 화폐의 미래 구매력은 감소한다. 저축의 실질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되면, 저축보다 지금 소비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지난 수십 년간 선진국의 실질금리는 계속 하락했는데 이런 환경에서 돈을 그냥 들고 있는 것은 손실이다.

생산한 가치의 대가로 돈을 받아, 그걸 모아서 온가족이 화목하게 지낼 집을 사거나, 오랜 기간 쌓은 전문성과 자본을 바탕으로 사업을 일군다는 서사가 붕괴하면 사람들은 점점 한 방을 노린다.

마시멜로우 실험
제미나이에게 마시멜로우 실험을 시적으로 그려달라고 했다

높은 시간 선호의 통로

높아진 시간 선호가 수요를 만들었다면, 이 수요를 충족할 통로를 연 서비스들이 있다. 코인베이스(Coinbase), 로빈후드(Robinhood), 그리고 예측 시장의 칼시, 폴리마켓는 모두 높은 시간 선호를 기반으로 하는 금융 거래의 진입 장벽을 극단적으로 낮춘 서비스다.

각 플랫폼에서 운영하는 밈코인, 레버리지 트레이딩, 스포츠 베팅, 예측 시장의 공통점은 결과가 빠르게 나온다는 점이다. 10년 뒤를 바라보는 투자가 아니라, 며칠 안에 승패가 갈린다. 특히 예측 시장은 결과가 명확히 정해지는 시점이 있다. 주식은 그래도 언제 팔아야 할지 모르지만, 선거 결과는 특정 날짜에 결판난다. 빠른 피드백, 명확한 결과. 높아진 시간 선호를 가진 사람들에게 딱 맞는 구조다.

그리고 예측 시장은 한 발 더 나아간다. 투기 대상의 범위 자체를 넓혀버렸다. 백악관 브리핑에서 나올 단어, 다음 주 일론 머스크의 트윗 개수, 특정 국가의 지도자가 언제 사망할지. 이것들은 본래 자산이라 보기 어렵다. 자산화될 수 없는 것들이 자산화되면서 높은 시간 선호의 통로는 더욱 넓어진다. 성실한 저축이 벌 받고 투기가 보상받는 환경에서 나타나는 적응 행동이자, 내가 예측 시장에서 느낀 기이함의 정체이다.

비트코인 기반 기업인 21 캐피탈(21 Capital)과 스트라이크(Strike)의 CEO 잭 맬러스(Jack Mallers)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Different starting points. Same destination.

Coinbase. Robinhood. Sports betting. Prediction markets.

When currency is debased, everyone is a speculator. Hard work isn’t enough, you have to "predict" the weather.

I won’t build that world for my kids. The future needs Bitcoin. https://t.co/Uo1q32F7fP

— Jack Mallers (@jackmallers) December 18, 2025

그래도 딱 한 판?

물론 맨 앞에서 언급한 Domer 이외에도 이 시장에서 부자가 된 사람은 꽤 있을 것이다. 서문의 스트리머도 인터뷰에서 전업으로 예측 시장에서 활동하며 직장 다닐 때보다 돈을 더 번다고 했다. 더욱이 암호화폐 때문에 온라인 결제에서 마찰이 줄어들 때 생기는 효과가 하나 더 생기는데 트레이딩에 동원되는 알고리즘 봇들이 직접 암호화폐 주소를 들고 다니면서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봇들이 인터넷 상의 유료의 벽을 넘어서 정보를 읽어온 다음 직접 예측 시장 사이트에서 베팅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사람보다 나은 수익률을 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아니지만 알고리즘 트레이딩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클로드 코드로 30분만 뚝딱 거리면 예측 시장 트레이딩 봇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오호라!

그러나 ‘인생 역전 한 번 해봐?‘하는 생각이 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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