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기록되고, 우주는 계산된다? - 1/4

인간의 기억과 슬랙 메시지

오늘은 지도 교수님과 Arm CPU에서 일어나는 특이한 행동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을 설계하였다. 대화 중 교수님께서 과거의 흥미로운 경험을 회고하셨는데, ‘예전에 한 CPU에 동시성 프로그램 테스트를 했을 때, 비정상적인 실험 결과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실험 오류가 아니라 하드웨어 자체의 결함이었다’는 것이었다.

그 CPU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으나 교수님께서 CPU의 이름을 기억하시지 못하였고, 결국 이 물건의 정체를 찾기 위해 연구실 메신저를 전부 뒤져보았다. 온갖 채널에 “bug”, “hardware”, “errata”, “cpu” 등의 쿼리를 던져본 끝에 OOO 박사님께서 문제의 CPU를 두고 “flawed"라고 표현한 2022년의 스레드를 발견했다.

Found
찾았다!

소박한 성취감을 느끼던 중 문득 ‘정제된 문서가 아니더라도 연구 과정에서 오고 간 모든 이야기가 텍스트로 저장되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LLM은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누구보다 효율적으로 요약해 줄 수 있으니, 저장소와 잘 연동만 되었다면 오늘과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필요한 정보를 순식간에 뽑아줄 수 있었을 것이다. 낙서도 저장만 해두면 쓸모 있는 정보가 되어 돌아오는 놀라운 세상이다. 그러다가 상상의 엑셀을 밟아버렸고 컴퓨터가 우주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기록해두면 어떨지 궁금해졌다.

기록의 무게

지금부터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데이터로 저장한다고 하면 필요한 저장공간은 얼마나 될까?

Gemini: 정말 흥미롭고 거대한 사고 실험이네요. 필요한 메모리 크기는 천문학적으로 달라집니다.

Level 1: 현재 존재하는 모든 디지털 데이터만 저장한다면?

Level 2: 인간의 뇌와 경험까지 저장한다면? (매트릭스 수준)

Level 3: 물리학적 완전성을 추구한다면? (라플라스의 악마)

제타바이트, 요타바이트가 도대체 언제 쓰는 단위인가 싶어 따로 관련 내용을 찾아보았다. 현재 모든 데이터센터의 저장공간을 합산했을 때 얼추 150 제타바이트로 추정할 수 있고 1 요타바이트 시대에 진입하려면 한참 남았단다. Gemini의 답변을 읽으며 세상의 모든 정보를 기록할 욕심을 내려놓았다.

나는 물리학적 완전성까지는 필요 없어. 사람들이 나눈 대화, 혹은 속마음만 오직 텍스트로 저장한다면 얼마나 될까?

Gemini: 텍스트 저장의 압도적 효율성

하지만, 단순 텍스트 기록은 손실 압축(Lossy Compression)이다. “밥 먹어요"라는 텍스트만으로는 그것이 진심 어린 제안인지 그냥 형식적인 인사말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희곡처럼 지문으로 상황 묘사를 덧붙인다면 총 저장 공간은 얼마나 돼?

Gemini: 각본(Script) 모델의 용량

데이터 센터를 짓다가 지구가 멸명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Gemini는 곧바로 다른 문제를 알려주었다.

Gemini: 진짜 병목은 스토리지가 아닌 연산(Compute)

Gemini: 전 인류 리얼타임 해석 시스템의 부하

무(모)한 프로세서
무(모)한 프로세서 만들기

세계를 모델링하는 기술적 병목은 아직 저장 장치가 아니라 세상의 정보를 적절히 추상화할 수 있는 지능의 총량(연산량) 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시 고성능 M5 맥북 프로만이 현대인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이다! 얄팍한 자기 합리화로 소비의 충동이 시대적 소명처럼 밀려오던 찰나, Gemini 선생이 갑자기 한 마디를 덧붙였다.

Gemini: 재미있는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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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싹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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