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는 것은 힘을 투사하는 것이다
로워리가 힘의 투사 이론 (power projection theory)을 자연에서 시작한다. 인간이 법, 화폐, 계약, 소프트웨어 같은 복잡한 추상 체계를 만들기 훨씬 전부터 생명은 이미 자원을 차지하고, 지키고,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싸워왔기 때문이다. 생존은 선언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접근권을 유지하는 일에 가깝다.
힘의 투사라는 말은 힘을 바깥 세계에 닿아 상대의 선택지를 바꾸는 일을 가리킨다. 내 영역을 건드리려면 비용이 든다고 인식시키고 필요하면 실제로 그 비용을 부과하는 것. 그래서 힘의 투사는 꼭 공격적 폭력을 뜻하지 않는다. 더 넓게 말하면, 어떤 자원이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 세계에 물리적 비용을 부과하는 능력이다.
앞에서 세포막 이야기를 꺼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계란 단순히 여기까지가 나라고 말하는 선이 아니다. 그 선을 넘으려는 외부의 힘에 대해 어떤 저항을 만들어내는 구조다. 늑대가 으르렁거리는 것도, 나무껍질이 내부를 보호하는 것도, 성벽이 침입자의 동선을 바꾸는 것도 모두 같은 질문에 답한다. 이 자원을 건드리려면 너는 얼마를 치러야 하는가.
로워리에게 소유권은 처음부터 추상적인 권리가 아니었다. 자연에서 소유권은 먼저 힘의 증명에 가까웠다. 무엇이 내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지킬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생명은 말보다 먼저 이 차이를 배웠다.
공격 비용과 번영 여유
로워리는 이 질문을 공격의 비용 대비 이익 비율로 풀어낸다. 어떤 대상이 공격자에게 너무 큰 이익을 주면서 공격 비용은 낮다면, 그 대상은 쉽게 노려진다. 반대로 공격해서 얻는 것보다 치러야 할 비용이 크다면, 공격은 덜 매력적인 선택이 된다.
로워리는 이 비율을 BCR_A, 즉 공격자의 benefit-cost ratio로 둔다. 아주 단순하게 쓰면 BCR_A = B_A / C_A다. B_A는 공격자가 얻는 이익이고, C_A는 공격자가 치러야 하는 비용이다. 그러므로 방어의 핵심은 이 비율을 낮추는 일이다. 내가 가진 것을 덜 매력적으로 만들거나, 건드리는 비용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완벽한 안전이 아니다. 자연에는 완벽한 안전이 없다. 중요한 것은 공격자가 계산할 때 이익보다 비용이 커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생명체의 갑옷, 독, 위장, 민첩성, 무리 짓기 같은 전략은 모두 이 비율을 바꾸는 방법이다. 더 많은 자원을 얻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원이 많아질수록 공격자에게도 더 매력적인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영은 이상하게도 방어 능력과 함께 커져야 한다.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로워리가 말하는 번영 여유는 이 사이의 공간이다. 내가 가진 것이 커져도, 그것을 빼앗으려는 자에게 충분히 큰 비용을 부과할 수 있다면 그만큼 더 자유롭게 번영할 수 있다.
협력과 사슴뿔
생명은 혼자서만 이 문제를 풀지 않았다. 여러 생명체가 함께 움직이면 공격자가 치러야 할 비용이 갑자기 커진다. 협력은 도덕적으로 아름다운 행동이기 전에, 공격 비용을 올리고 생존 확률을 높이는 힘의 투사 전술이기도 하다. 무리, 군집, 조직은 모두 이런 의미에서 더 큰 막을 만드는 방식이다.

힘의 투사가 늘 죽음과 파괴로 끝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로워리가 특히 중요하게 보는 예가 사슴뿔이다. 뿔은 같은 종 안에서 힘을 겨루게 해주지만, 그 경쟁이 곧바로 치명적인 살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모양이 설계되어 있다. 뿔은 서로 엉키지만, 칼처럼 장기를 뚫지는 않는다. 서로의 힘을 시험하고 서열을 정하지만, 종 전체를 불필요하게 망가뜨리지는 않는다.
이 대목이 인간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인간도 자원과 권력을 둘러싼 경쟁을 멈추지 못한다면, 문제는 경쟁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다음 단계에서 인간은 이 힘겨루기를 몸과 무기 밖으로 옮겨보려 한다. 그것이 추상적 권력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