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계에 물리적 비용을 붙이기
작업증명(Proof-of-Work)은 말 그대로 어떤 일을 실제로 했다는 증명이다. 비트코인에서는 채굴자들이 새 블록을 만들기 위해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해시값을 찾는 계산을 반복한다. 답을 찾기는 어렵지만, 답이 맞는지 검증하기는 쉽다. 그래서 네트워크는 “누가 말로 권리를 주장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실제 계산 비용을 치렀는가"를 기준으로 다음 블록을 받아들인다.
비트코인을 돈으로만 보면 작업증명은 이상한 낭비처럼 보인다. 왜 장부를 유지하는 데 그렇게 많은 전기를 써야 할까. 왜 더 빠르고 효율적인 합의 방식이 있는데 굳이 느리고 비싼 계산을 반복해야 할까. 로워리는 바로 이 비효율성에 주목한다. 그의 관점에서 작업증명의 핵심 가치는 효율이 아니라 비용이다.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시스템은 상태를 바꾸기 위해 허가를 요구한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권한을 확인하고, 서버가 요청을 받아들이면 데이터가 바뀐다. 이것은 논리적 제약이다. 반면 비트코인은 장부의 상태를 바꾸는 일에 물리적 비용을 붙인다. 블록을 만들려면 실제 전기를 쓰고, 실제 장비를 돌리고, 실제 열을 버려야 한다.
이 차이가 중요하다. 비트코인의 규칙은 단순히 “하지 마라"라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공격하려면 그만큼의 물리적 비용을 감당하라고 요구한다. 디지털 세계의 상태 변경을 물리 세계의 에너지 소비와 연결하는 것이다.

작업증명과 전자-사이버 돔
로워리는 작업증명을 전자-사이버 방어 도구로 읽는다. 공격자를 믿지 않고, 관리자를 믿지 않고, 선의를 믿지 않는 대신, 상태를 바꾸려는 사람에게 비용을 치르게 한다. 이것은 제로 트러스트에 가까운 방식이다. 네가 누구인지보다, 네가 실제로 얼마만큼의 물리적 비용을 지불했는지가 중요해진다.
이 점에서 작업증명은 세포막과 이상하게 닮았다. 세포막이 안과 밖을 나누고 침입에 물리적 제약을 만들었다면, 작업증명은 디지털 장부의 상태를 바꾸는 일에 전기적 제약을 만든다. 물론 비트코인이 모든 사이버 보안 문제를 해결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로워리는 여기서 새로운 종류의 방어 가능성을 본다. 디지털 자원을 순수한 논리만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비용 함수로 보호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비트코인의 에너지 소비는 로워리에게 결함이 아니라 기능이다. 중요한 것은 전기를 많이 쓴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전기 소비가 공격자의 비용 구조를 바꾼다는 점이다. 공격이 공짜에 가까우면 공격은 반복된다. 공격이 비싸지면, 공격자는 계산을 다시 해야 한다.
국방적 의미와 공개적으로 확인된 것
이 관점은 비트코인을 둘러싼 논쟁의 위치를 바꾼다. 비트코인이 좋은 돈인지, 나쁜 돈인지, 투기인지, 저장 수단인지는 여전히 중요한 질문이다. 하지만 로워리의 질문은 조금 다르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시대의 힘 투사 기술이라면, 국가는 이것을 금융 자산이 아니라 전략 인프라로도 보아야 하지 않는가.
2026년에 흥미로운 공개 발언이 있었다. 2026년 4월 22일 미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 Samuel Paparo 제독은 INDOPACOM이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노드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트코인 프로토콜을 이용해 네트워크를 모니터링하고 보호하는 작전적 테스트라고 설명했다.1
노드가 어떤 데이터를 다루는지, 어떤 네트워크를 보호하는지, 실험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공개 발언만으로 알 수 없다. 하지만, 국방 조직이 비트코인을 암호학, 블록체인, 재사용 가능한 작업증명이 결합된 컴퓨터 과학 도구로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로워리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돈 이후의 비트코인
로워리는 “코인"이라는 이름이 우리를 너무 빨리 금융의 언어로 끌고 간다고 본다. 클라우드가 실제 구름이 아니듯, 비트코인의 코인도 시스템의 본질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 화약이 처음에는 약이나 연금술의 산물로 이해되었지만 나중에는 전쟁 기술로 읽혔듯, 비트코인의 첫 번째 대중적 용도가 금융이었다고 해서 그 가능성이 거기에만 묶이는 것은 아닐 수 있다.
그가 보려는 것은 그 아래의 구조다. 누가 장부를 바꿀 수 있고, 그 권한은 어떻게 배분되며, 공격자는 어떤 물리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 비트코인은 단순한 디지털 화폐가 아니라, 디지털 상태를 전력과 하드웨어에 묶어두는 장치로 보인다.
나는 이 관점이 비트코인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에너지, 정치, 채굴 산업의 집중, 규제, 실제 보안 적용 가능성 같은 질문은 그대로 남아 있다. 다만 로워리는 비트코인을 “좋은 돈인가"라는 찬반 구도에서 꺼내어 “디지털 세계에서 물리적 힘은 어떻게 투사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위에 올려놓는다.
생명은 안과 밖을 나누고, 자원을 붙잡고, 침입 비용을 만들며 시작했다. 인간은 그 비용을 법과 국가와 소프트웨어로 추상화했다. 그리고 이제 로워리는 작업증명이 디지털 세계에 다시 물리적 비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디지털 세계의 경계를 무엇으로 지킬 것인가.
Congressman Lance Gooden, “Gooden Reveals Historic U.S. Military Use of Bitcoin Node,” 2026-04-22. 청문회 일정과 증인 정보는 House Armed Services Committee의 “U.S. Military Posture and National Security Challenges in the Indo-Pacific Region” 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다. ↩︎